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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철과일

토마토 재배 역사: 조선 중기 도입부터 일제강점기, 품종 변화까지

by 이왕이면88 2026. 3. 15.

우리나라 토마토 재배 역사를 정리했습니다. 조선 중기 남만시 도입 기록부터 19세기 인식 변화, 일제강점기 재배 확산, 핑크계·레드계 품종, 유한형·무한형 변화까지 쉽게 살펴봅니다.

토마토 재배 역사를 설명하는 차분한 대표 이미지
토마토는 조선 중기에는 남만시라는 이름으로 알려졌고, 오랜 시간을 지나 오늘의 익숙한 재배 작물이 되었습니다.

 

 

토마토는 지금 우리 식탁에서 너무 익숙한 작물입니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토마토 재배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 보면, 처음부터 밭에서 널리 길러 먹던 작물은 아니었습니다.

조선 중기에는 남만시라는 낯선 이름으로 소개되었고, 이후 오랫동안 감과 비슷한 외래 열매처럼 받아들여졌습니다. 그러다 근대와 일제강점기를 지나며 조금씩 식용과 재배의 가능성이 커졌고, 해방 이후에는 품종과 재배 방식이 정리되면서 오늘의 토마토 재배로 이어졌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우리나라 토마토 재배 역사를 따라가며, 조선 중기 도입 기록부터 일제강점기, 그리고 핑크계·레드계 품종과 유한형·무한형 재배 흐름까지 차분히 정리해 보겠습니다.


조선 중기, 토마토는 ‘남만시’라는 이름으로 처음 알려졌다

토마토에 관한 가장 이른 기록으로 자주 언급되는 것은 이수광의 『지봉유설』입니다. 여기서 토마토는 남만시(南蠻柿)라는 이름으로 등장합니다. ‘시(柿)’가 감을 뜻하는 만큼, 당시 사람들은 토마토를 감처럼 생긴 낯선 외래 열매로 받아들였던 것으로 보입니다.

즉, 토마토는 처음부터 익숙한 채소가 아니라, 설명이 필요한 이국의 작물이었습니다.

 

하지만 기록에 등장했다고 해서 곧바로 재배가 널리 퍼진 것은 아니었습니다. 한국민족문화 대백과사전에는 토마토가 선조·광해군 무렵 전래되었지만, 당시에는 풍미가 맞지 않아 재배가 크게 이루어지지 않은 것 같다고 적혀 있습니다.
조선 중기에 존재는 알려졌지만, 곧바로 식용 작물이나 밭작물로 자리 잡지는 못했던 것입니다.

 

 

조선 후기와 19세기, 감과 혼동되고 잡초처럼 여겨지기도

조선 후기와 19세기에 들어서도 토마토는 여전히 낯선 식물에 가까웠습니다.

작고 선홍색 열매를 맺는 신기한 식물이기는 했지만, 아직 본격적으로 길러 먹는 중요한 작물은 아니었습니다. 감과 비슷한 외래 열매처럼 보이기도 했고, 때로는 고추와 헷갈리는 식물, 잡초에 가까운 존재처럼 여겨지기도 했습니다.

 

즉, 19세기의 토마토는 식용 가치가 완전히 자리 잡은 작물이 아니라, 정체가 애매한 외래 식물의 성격을 여전히 지니고 있었습니다.

 

 

일제강점기, 토마토는 식용과 가공의 가능성을 넓히기 시작

일제강점기에 들어서면서 토마토는 조금 다른 위치로 이동하기 시작합니다. 여전히 오늘날처럼 대중적인 주작물은 아니었지만, 적어도 먹는 작물로서의 흔적은 더 분명해집니다.

 

1924년 이용기의 『조선무쌍 신식요리제법』에는 토마토 샐러드와 수프가 소개되었다는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이는 토마토가 단순한 관상용 식물을 넘어, 이미 식생활 속으로 조금씩 들어오고 있었음을 보여줍니다.

또 1930년대에는 조선총독부 식산국이 토마토 통조림 수출까지 염두에 두고 대구, 인천, 부산, 원산 부근에서 토마토 재배를 장려했다고 전해집니다.


즉, 일제강점기는 토마토가 낯선 외래 열매에서 벗어나, 식용과 가공 원료로서 가치가 주목되기 시작한 시기라고 볼 수 있습니다.

줄기에 달려 자라고 있는 토마토 재배 이미지
토마토는 오랫동안 낯선 외래 식물로 머물다가, 근대 이후 조금씩 재배 작물로 자리를 넓혀 갔습니다.

 

 

품종의 흐름, 핑크계와 레드계 토마토가 자리 잡다

근대 이후 국내 토마토 재배에는 일본을 통해 들어온 품종의 영향이 컸습니다. 한국민족문화 대백과사전은 일반 토마토 품종으로 일본에서 수입한 복수 1·2호를 언급합니다. 이는 국내 토마토 재배가 본격화되는 과정에서 일본계 품종의 영향이 실제로 존재했음을 보여줍니다.

 

이후 국내 재배 현장에서는 토마토를 색깔과 계통에 따라 핑크계와 레드계로 구분하는 흐름이 자리 잡았습니다. 제주농업기술원 자료는 일본계 완숙 토마토로 모모타로 계통을, 유럽계 토마토로는 도색계와 적색계 품종을 설명합니다.

 

오늘날 우리가 흔히 보는 분홍빛 토마토와 붉은 토마토의 구분도 이런 품종 흐름과 이어져 있습니다. 다만 일제강점기부터 지금과 같은 구분이 완전히 정착되었다고 단정하기보다는, 근대 이후 품종 도입과 재배 확산 속에서 핑크계와 레드계의 흐름이 자리 잡아갔다고 이해하는 편이 자연스럽습니다.

핑크계와 레드계 토마토를 비교한 이미지
국내 토마토 재배는 품종 도입과 확산을 거치며 핑크계와 레드계 흐름이 함께 자리 잡았습니다.

 

 

재배형의 변화, 유한형에서 무한형 중심으로

토마토 품종은 생장 습성에 따라 유한형과 무한형으로 나뉩니다.

 

유한형은 일정 시점까지 자라다가 성장이 멈추고 한 번에 열매가 집중적으로 달리는 생장 방식입니다.

무한형은 줄기가 계속 자라면서 꽃과 열매가 차례로 달리는 생장 방식으로 장기 재배가 가능한 특징이 있습니다. 6개월 이상 재배가 가능하고, 연간 35~40단 정도까지 수확할 수 있는 장기재배형입니다.

 

국내 재배 초기에 유한형과 무한형이 함께 재배되었지만, 재배 기간이 길고 수확량을 더 안정적으로 끌고 갈 수 있는 무한형이 점차 더 중요해졌습니다. 특히 후대로 갈수록 장기 관리형 재배가 확대되면서, 무한형은 현대 토마토 재배와 더 잘 맞는 방향으로 자리 잡게 되었습니다.

 

 

시설재배 이전까지의 흐름을 한 번에 정리하면

지금까지의 역사를 짧게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 조선 중기: 토마토는 ‘남만시’라는 이름으로 처음 알려졌습니다.
  • 조선 후기~19세기: 감과 혼동되거나, 잡초처럼 여겨질 만큼 여전히 낯선 외래 식물이었습니다.
  • 일제강점기: 식용과 가공 작물로서 가능성이 조금씩 넓어졌습니다.
  • 근대 이후: 일본을 통한 품종 유입과 함께 핑크계·레드계 품종 흐름이 자리 잡았습니다.
  • 재배형 변화: 유한형과 무한형이 함께 재배되다가, 장기 재배에 유리한 무한형의 비중이 점차 커졌습니다.

즉, 우리나라 토마토 재배의 역사는 한 번에 확 퍼진 이야기가 아니라, 낯선 외래 식물이 오랜 시간을 거쳐 식용 가치와 품종, 재배 방식이 조금씩 정리되어 간 과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마무리

토마토는 처음부터 환영받는 작물이 아니었습니다.

 

조선 중기에는 이름부터 낯설었고,
19세기에도 감과 헷갈리거나 잡초처럼 여겨졌으며,
오랫동안 밭에서 널리 길러 먹는 작물이 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토마토는
낯선 외래 열매에서
먹는 작물로,
그리고 품종과 재배형이 분화된 원예 작물로 자리를 바꾸었습니다.

 

그 변화가 하나씩 쌓인 끝에, 이후의 시설재배 시대도 가능해졌습니다.

 

익숙한 식재료 하나에도
이처럼 긴 시간과 여러 번의 변화가 숨어 있다는 점이,
토마토를 조금 다르게 보게 만듭니다.

 

 

이왕이면, 88하게!

 

 

 

<토마토 시리즈 전체 보기>

이 글은 토마토 시리즈 중 한 편입니다.

전체 흐름과 연결된 글은 아래 허브글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토마토 총정리: 영양, 보관, 섭취, 역사까지 한 번에

 


참고자료

  • 한국민속대백과사전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 서울시 도시농업포털 자료
  • 제주농업기술원 자료